하루는 이미 세상을 떠난 다섯 명의 인물이 하늘 위에서 토론을 벌였다. 그들은 모세와 예수,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으로 모두 유대인이었다. 토론 주제는 인간 사회의 핵심적인 원리가 무엇인가였다. 엄숙한 표정으로 모세가 먼저 말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이성일세.” 그러자 옆에 있던 예수가 사랑이 가장 중요한 거죠.”라며 의견을 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탐탁지 않게 듣고 있던 마르크스는 손을 내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모든 것은 이야, 경제가 인간 사회를 결정한다고.” 그때 프로이트가 말을 가로채며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성과 무의식이라고 말했다. 논쟁이 계속되자 아인슈타인은 피곤하다는 듯 한 마디를 던졌고, 이날 토론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모든 것은 상대적일세.”

 

유대인 사회에서 회자되는 유머다. 그러나 단순한 조크로 받아넘기기에는 이들이 인류 사회에 미친 영향력이 너무 크다. 인간의 역사에서, 특히 서양 문명사에서 유대인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인류 역사의 중요한 길목에서 큰 역할을 했던 유대인들은 수백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성인으로, 위대한 학자로, 또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20세기 미국의 대부호인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미국 최초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 ‘퓰리처상을 만든 언론인 조셉 퓰리처(Joseph Pulitzer), 수십 년간 어마어마한 규모의 투자펀드를 운용하며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전설의 앵커 래리 킹(Larry King) 등 전 세계에 회자되는 유명 인사의 상당수가 유대인이다. 또한, 재산 10억 달러 이상인 미국인 가운데 3분의 1, 미국의 유명 대학의 교수 중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2014년 노벨상 개인부문 수상자 열두 명 중 여섯 명이 유대인 또는 유대 가문이었다. 유대인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를 따라 유대인 여부가 결정된다. 부모 중 한쪽이 비()유대인일 경우 아버지가 유대인이면 비유대인,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유대인이 되는 것이다.

 

노벨상에서 유대계의 강세는 매년 있는 일이다. 유대계는 전 세계 인구의 0.2%(1,300만 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2014년까지 노벨상 개인 부문 수상자의 22%(195)를 차지했다. 노벨상 수상에서 유대계가 독보적인 결과를 내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분명한 것은 유대계 혈통, 즉 유대인만이 타고나는 노벨상 DNA가 따로 있진 않다는 것이다.

 

핀란드 헬싱키 대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180여 개국 국민의 지능지수를 조사해보니 이스라엘 국민의 IQ는 평균 95, 전체 26위였다. 19위인 미국(98)보다 낮고, 2위인 한국(106)과는 차이가 컸다. , 유대인이 이토록 학문과 정치 등 사회 전 영역에서 뛰어난 성과를 나타내는 것이 유전이나 생물학적 영향이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유대인을 유대인답게 만드는 것일까. 유대인은 2,000년이 넘는 시간을 나라 없이 헤매며 살았지만, 그들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잘 지켜왔다. 그 바탕에는 토라탈무드로 대표되는 가정교육이 있었다. 그들은 전통적인 교육 방식을 통해 창의력과 인성을 함양한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능력만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기여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고집하면서 다른 문화, 다른 민족과 마찰을 빚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대인 샤일록은 타인에게 동정 따위는 없는 못된 인물로 그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유대인은 가정에서의 전통적인 교육방식을 실천하고 고유의 문화를 지키며, 사회적으로도 높은 성취를 이룩해 왔다. 그들은 지식교육과 인성교육의 조화를 통해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교육을 펼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이스라엘을 작지만 강한 나라로, 인류사에 큰 업적을 남긴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민족으로 만든 힘이다.

 

 

유대계 교육 방식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면 이렇다. 첫 번째는 즐거움이다. 재미있고 행복해야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흥미를 일깨우면서 아이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찾는 일이다. 자유롭게 놀고 즐겁게 익히면서 꿈과 끼를 발견한다. 이것은 강압하거나 선택지를 고르도록 억압해서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세 번째는 끊임없는 토론이다. 유대계는 가정에서 밥을 먹을 때, 학교에서 친구들과 쉴 때 등 일상 곳곳에서 토론이 생활화돼 있다. 토론을 통해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타인과 의견을 나누며 자신이 몰랐던 것을 배운다. 이런 토론은 자기주도 능력을 키우고, 궁극적으로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을 갖추게 한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토론 교육은 국내 교육 현실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소수점 차이로도 결과가 결정되는 일이 많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 하나로 개인의 미래까지 달라지는 한판 승부사회인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이런 방식 아래서는 창의적인 인재가 나올 수 없다. 이런 체제 아래 학원과 부모가 만들어낸 방식으로 키워진 아이들은 자생력을 갖지 못한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실시한 한 조사에 따르면, 서울지역 고2 학생(1,165)의 내신 성적을 추적해보니 4년 이상 과외나 선행학습을 지속한 학생이라도 학년이 올라가면 그 효과가 떨어져 과외 또는 선행학습을 전혀 받지 않은 학생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상위권 학생 중에서는 성적 역전 현상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공부는 기본적으로 자기주도 학습이 전제돼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 너무 많은 지식을 주입하기보다는, 그 지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과외와 선행학습이 지나치면 그릇을 키우기도 전에 그 안의 내용물이 차고 넘치면서 오히려 학업 능력이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유대인은 이 같은 원리를 잘 알고 있었다. 나라 없이 오랜 시간을 떠돌면서도 문화적 전통을 지키며 살아올 수 있었던 비결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있었다. 지식을 주입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지식을 탐구할 수 있는 지혜를 길러주는 것이 유대 교육이 가진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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